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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23

Interview : Designer Sonjunghoon of VANDY THE PINK

반디 더 핑크의 반디는 작업물로 자신을 대변한다. 한국에서 태어난 손정훈 디자이너는 종종 자신의 패션과 신발 뒤에 스스로를 숨기며, 백그라운드에 머무르는 것을 선호한다. 그러나 여러 측면에서 인물 자신보다 작업물을 더 앞에 배치하는 것은 어쩌면 초상화보다 더, 디자이너에 대한 더 많은 것을 보여준다. 반디 더 핑크(Vandy The Pink)라는 브랜드가 장난기 많고, 변덕스럽고, 뻔뻔하기까지 한 지금의 모습으로 알려질 때까지, 손정훈은 자신이 걸어온 길을 따라 기념품처럼 모은 기억, 레퍼런스, 영향받았던 모든 것들을 모아 그가 살아온 경험들을 단적으로 표현해냈다.

빌리 아일리시, 블랙핑크의 리사와 같은 ‘팬’들과 히든 뉴욕(Hidden New York) 등의 브랜드와의 콜라보레이션과 함께, 반디 더 핑크는 그만의 재밌는 렌즈를 통해 럭셔리 의류들과 모티브들을 스니커와 옷으로 맞춤 제작하며 인터넷 센세이션으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과정에 대한 그의 사랑은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후 조지 메이슨에서 대학을 다니는 동안 형성되었다. 등록금을 내기 위해 레스토랑에서 일했던 그는 당시 새로운 제품을 살 돈이 없었기 때문에, 스스로 제품들을 리폼했고 그것이 마치 새로운 제품인 것처럼 친구들을 설득했다. 자신의 재능을 커스터마이제이션 작품(customization craft)들로 꽃피우기 전의 이야기다.


그가 태어난 곳과 사는 곳의 이중성은 지금의 그의 작품에서 두드러진다. 예를 들어, 반디 더 핑크는 그의 어머니의 옷 가게를 지칭하는 말이다. 한편, 그의 시그니처인 음식과 버거 모티브는 미국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인 패스트푸드 레스토랑들의 화려한 광고와 마케팅들로부터 컨셉이 잡혔다. 반디 더 핑크를 동료들 사이에서 더 눈에 띄게 한 것은, 자신의 비전과 영향력을 가벼운 마음으로 좋은 디자인과 섞이게 하는 그만의 능력일 것이다. 

어도비 Diverse Voices initiative의 지원과 함께, 그리고 아시아와 태평양의 아일랜더 크리에이터들의 이야기를 더 널리 퍼트리고 지지하기 위해, 뉴욕 공립학교의 공동 설립자 겸 디자이너인 Dao-Yi Chow는 VANDY와 함께 앉아 그의 대중문화 영감과 그의 창의적인 작업물들에 있어서 재미 요소를 주입하는 것의 중요성 그리고 일에 열정을 불어넣는 방법에 대해 토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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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YC : 한국에서 미국으로 언제 이사 오셨나요?
VANDY : 한국에서 태어났고 18살 때 이곳으로 이사 왔습니다. 한국에서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 온 후, 그들은 저를 2학년으로 보냈고 그래서 모든 과정을 다시 겪어야 했습니다.

DYC : 그때 영어를 하셨나요?
VANDY : 사실 그렇지 않아요. 우리는 한국에서 영어를 배우지만 말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아닙니다. 문법을 이해하려고 더 노력합니다. 제가 여기 왔을 때엔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약간 이해할 수는 있었지만 제 입에서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DYC : 무슨 말인지 완전히 이해가 됩니다. 제 아내는 홍콩에서 태어나고 자랐고 28살 때 처음 이리로 왔는데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학교에서 영어를 배우지만, 대화를 할 때는 영어를 1 대 1로 번역하지 않습니다. 고등학교는 아마도 가장 영향력 있는 시기일 것이고 그것은 당신에게 갑작스러운 변화였음에 틀림없네요.
VANDY : 솔직히 정말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게다가, 아시아에서는 교육에 많은 부담을 느낍니다. A학점을 받지 않으면(공부를 잘하지 않으면) 직업을 가질 수 없지만, 여기서는 아시아 국가에 비해 그다지 부담을 느끼지 않았고 그래서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미국에서는 오후 2시쯤이면 학교가 끝나지만 아시아로 돌아가면 말 그대로 밤 11시에 하교하곤 했습니다. 숙제하고, 자고, 일어나, 학교에 가고를 반복합니다. 하지만 이곳에 왔을 때 저는 학교와 교육에 대한 부담을 덜 느꼈고 지금 당장 스스로 하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기 시작했습니다.

DYC : 당신은 버지니아에 도착해서 새로운 학교, 새로운 언어, 새로운 문화에 가게 되었습니다. 더 많은 자유시간을 갖는다고 하셨는데, 그만큼 창의적인 것들에 더 빠지게 되었나요?
VANDY : 저는 다른 사람들의 시작과는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그당시 전 정말 빈털터리였어요. 고등학교 이후로 조지 메이슨 대학에 진학했지만, 아버지의 일이 그다지 잘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스스로 대학 등록금, 집세, 모든 것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정말 힘들었습니다. 학교에 다니면서 한국 바비큐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돈을 더 벌기 위해 한 학기 휴학하고 나서 학교로 돌아가 학비를 내야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돈을 벌기 위해 다시 휴식을 취하고 학교로 돌아간 다음 다시 한국식 바베큐로 돌아가 다시 서빙을 했습니다. 매우 힘든 시간이었지만, 그만큼이나 제가 하는 일을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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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YC : 어떤 거였죠?
VANDY : 낙서하고 신발에 그림을 그리는 거였죠. 예를 들어, 예전에 새로운 에어 포스를 살 돈이 없지만 동시에 멋있어 보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 신발이 가장 인기가 있었을 당시 저는 그것을 새로운 색으로 칠했고 사람들로 하여금 내가 새로운 신발을 샀다고 생각하게끔 했습니다. 전 단순히 신발을 색칠했던 거고 그런 일들이 저를 성장시키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커스텀 에디션 같은 단어는 없었고, 리폼에 가까웠습니다.

DYC : 저는 그것이 많은 예술가들이 직면하고 있는 공통된 어려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상황들이 당신을 더 창의적으로 만들고, 더 재능 있게 만들고, 당신이 말했던 것처럼, 주변의 것들을 리폼하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직업을 갖는 것, 가족을 도와야 하는 것에 대해 얘기했는데 아마도 이민 1세대들의 보편적인 얘기라고 생각됩니다. 그런 경험들이 어떻게 당신을 더 창의적일 수 있게 다듬고 나아가 사업적인 관점을 갖게 했나요?

VANDY : 저는 그 경험이 저에게 동기를 부여했다고 말할 것입니다. 저는 항상 무언가를 준비한다. 예전에 학교에 다니고 아르바이트를 할 때는 하루가 너무 짧아서 항상 시간 관리를 하려고 노력하곤 했습니다. 대여섯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야 했고, 방과 후에는 일을 하느라 여섯 시간을 더 써야 했다. 그러고 나서야 스스로 하고 싶은 일에 쓸 수 있는 시간이 조금 생겼었습니다. 저는 그 힘든 시간들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시간을 관리해야 하고, 자금을 관리해야 합니다. 저는 항상 미리 계획을 짜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때’가 오더라도 당황하지 않습니다. 저는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DYC : 다시 전의 얘기로 돌아가 봅시다. 1세대, 한국에서 온 이민자, 그것이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VANDY : 전 지금 31살인데 18살 때 왔으니까 계산해 보면 아직 한국에 있던 시간이 더 많습니다. 여기 처음 왔을 땐 패스트푸드점 광고가 정말 고급스러웠어요. 뉴욕에 갔었는데 네온사인, 큰 광고, 그리고 모든 것들이 저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DYC : 한국인이라는 자신의 배경이 당신이 일을 하는 데에도 영향을 주나요? 일을 하며 그런 것들을 생각을 하나요?

VANDY : 모든 것이 저의 조국과 정말 다르기 때문에 그것은 확실하게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프로젝트에 뛰어들거나 새로운 것을 만들려고 할 때마다, 저는 항상 제가 한국에 있을 때 익숙하게 하던 것들과 지금 미국에서 하고 있는 것들을 정확하게 파악하려고 노력합니다. 그것들을 비교하고 섞은 다음에 결국은 더 좋은 방법으로 내놓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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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YC : 당신의 어머니의 가게 이름이 Vandy였습니다. 그 이름은 어디서 온 건가요?

VANDY : 저희 어머니의 실제 가게 이름은 반디(Bandi)입니다. 반디는 반딧불이라는 뜻입니다. 어머니께 왜 그렇게 이름 지었냐고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녀는 "나는 반딧불이나 다름없다.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한다.”라고 답했습니다. 반디는 그녀에게 희망을 떠올리게 합니다. 미국에 와서 학교에 갔더니 다들 정훈이라는 내 한국 이름을 부르곤 했는데 발음조차 못했고, 그래서 멋진 영어 이름이 필요했다. 저는 반디라는 어머니의 가게에서 아이디어를 얻었고 Vandy라고 이름을 붙이게 되었습니다.

DYC : 'The Pink'는 어디에서 왔을까요?



VANDY : 한국에서는 핑크가 정말 화려하고 희망적인 색이기도 합니다. 학교에 다닐 때 저는 정말 돈이 없어 힘든 시간을 보냈고, 부모님은 내가 예술적인 일을 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전 정말 인생에 희망이 필요했기 때문에 이름에도 반디와 핑크도 넣었습니다. 희망과 희망.

DYC : 두 배의 희망. 멋진데요. 왜냐하면 그 에너지와 그 정신은 당신의 많은 작업물들에서 나타나니까요. 당신의 작품은 매우 낙관적이고 희망적인 느낌이 듭니다. 부모님은 당신을 자랑스러워하시나요?


VANDY : 음, 아시아인 부모를 알잖아요. (웃음)


DYC : 그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어도 당신에게 알려주지는 않을 거예요. 어머니의 가게가 어떤 곳이었는지, 패션 스토어 주변에서 자란 기분이 어땠는지 조금 더 얘기해 줄 수 있나요?


VANDY : 어머니가 저보다 더 어렸을 때 또는 제 또래였을 때, 엄마도 패션에 관심이 많으셨습니다. 예쁜 옷, 레이스, 꽃들. 그러나 그것은 실제 판매를 위한 것들은 아니었습니다. 그 가게는 작은 마을에 있었고 그것은 지역 사람들을 위한 것이 더 많았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있어 그것은, 정말로 많은 따뜻함을 느끼게 하는 곳이었습니다. 엄마 가게를 생각할 때마다 정말 따뜻하고 좋은 사람들이 생각납니다. 엄마 가게를 생각할 때마다 항상 조국이 그립습니다. 그녀는 미국으로 이주해야 했기 때문에 결국 그것을 닫아야 했고, 그녀가 이곳으로 이주한 주된 이유는 제 인생의 성공을 위해서였습니다. 스스로의 이름을 Vandy라고 지은 것은 저에게 큰 의미가 있는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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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YC : 당신의 초기 작업에 영향을 준 것들에 대해 말해줄 수 있나요?


VANDY : 인터뷰 때마다 저는 ‘오케이션(Okasian)’이라는 한 한국 래퍼를 말합니다. 그는 언제나 제가 가장 좋아하는 랩퍼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래서 비즈니스를 시작했고 그다음에 DM을 통해서 저의 작업물들을 많이 보여줬지만 물론 그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냥 계속 보냈습니다. 어느 날, 아직도 기억이 나는데 새벽 3시쯤, 엄청나게 피곤한 상태에서 DM을 확인했는데 오케이션으로부터 답장이 와있었습니다. 그 주에 저는 그에게 모든 물건을 보냈고, 그는 실제로 무대에서 제가 그린 신발을 신었고, 그는 인스타그램 스토리에서 저를 언급해 주었습니다. 오케이션 이후로 모든 한국 래퍼들과 엮이게 되었기 때문에 그게 일종의 저의 전환점입니다. 그러자 한 달도 안 되어서 타이가(Tyga)가 연락이 왔고, 그게 내가 4~5년 동안 빠르게 성장한 방법입니다.


DYC : 멋지네요. DM 할 때처럼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 있나요?


VANDY : 오, 아주 많습니다. 비즈니스를 시작하고 제 브랜드를 시작한 이후로, 항상 저의 최고의 브랜드가 있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건 니고입니다. 항상 니고.

DYC : 과거 많은 커스터마이징과 리폼을 했던 것으로부터 지금은 당신만의 제품을 만드는 것으로 전환한 것에 대해 얘기해 봅시다. 왜 그게 중요한 결정이었을까요?

VANDY : 처음 몇 년 동안은 리폼이나 커스텀을 하는 것에 많이 집중했지만, 그것은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한 번에 한 개만 끝낼 수 있으니까요. 저는 아주 오래되고 빈티지한 LV 가방을 샀고 그러고 나서 그것을 잘라 신발과 모든 것에 붙였습니다. 사람들은 정말 좋아했지만, 저는 저만의 정체성과 브랜드를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저만의 일을 시작한 거죠.


DYC :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고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기회네요. 지금 하는 것들 중에 가장 좋아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VANDY : 저는 많은 장난감, 플러시 장난감을 만들어 왔습니다. 저희 아버지도 장난감을 모으곤 했기 때문에 저는 주변에 많은 장난감을 가지고 자랐습니다. 그것은 저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장난감은 정말 재미있고 멋집니다. 항상 제가 어렸을 때를 생각나게 합니다. 저는 정말로 저의 직원들과 고객들이 그런 느낌을 가질 수 있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장난감을 만들려고 합니다, 작은 장난감이라도. 저의 신발을 구매하면 그 안에 작은 장난감이 있습니다.


DYC : 맥도날드의 해피밀 같은 거네요. 당신의 미래 계획은 무엇입니까?


VANDY : 지금은 히트 컬렉션으로 안정감 있는 드롭을 하는 데에 정말 집중하고 있습니다. 2022년 봄/여름 첫 공식 컬렉션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한 달에 한 개씩만 발매할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이전에 했던 방식보다는 좀 더 전통적일 겁니다. 저희는 말하자면, ‘정직한 브랜딩’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DYC : 전 궁극적으로 당신이 당신의 브랜드가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정의 내리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디 더 핑크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도 바로 같은 에너지, 같은 희망이라고 생각합니다. 재미있는 질문 하나만 더 해도 될까요? 당신의 브랜드에서 음식이 너무 자주 등장하는 주제라서 더욱 궁금한데 혹시 어떤 음식을 가장 좋아하나요?


VANDY : 오, 물론이죠. 사실 전 많은 음식을 좋아하지만 지금은 오마카세입니다. 물론 버거가 항상 저의 1등이지만, 지금 당장은 오마카세에 가는 게 정말 즐겁네요.


DYC : 그 돈은 잘 들어오고 있는 거죠? 버거에서 오마카세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네요.
The contents of the interview and all images are from HYPEBEAST
Translated by Heigh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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